퇴근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
나는 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쳤다. 음악이든, 팟캐스트든, 유튜브든 무엇이든 좋았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듣고 있다'는 것이지, 무엇을 듣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한 습관이었고, 어느새 무음의 시간은 낯설기까지 했다. 퇴근길의 버스, 지하철, 거리에서 나는 소리는 내겐 백색 소음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말고, 세상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그날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이어폰 없이 퇴근해보기.
퇴근길 소음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 차창 밖 거리의 분주한 움직임, 누군가의 전화 통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처음엔 그 모든 소리가 산만하고 거슬렸다.
'왜 이렇게 시끄럽지?' 싶을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금방 새로운 자극으로 바뀌었다. 나는 오히려 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주변 환경에 몰입하게 되면서,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을 더 잘 보게 되었고, 감정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청각 자극 하나만 줄였을 뿐인데,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생각의 흐름'이 정돈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때에는 정보가 끊임없이 유입됐고, 머리는 늘 무언가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반면, 귀를 열어두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하루 중 가장 피곤한 퇴근길이 오히려 짧은 명상 같은 시간이 되었다. 감정 기복이 줄어들고, 회사 일에 대한 지나친 반추도 줄어들었다.
또한, 귀를 열어두면 자연스레 눈과 마음도 열리기 마련이다. 퇴근길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계절의 변화도 더 예민하게 느껴졌다.
이 실험을 마친 뒤, 나는 더 이상 귀를 항상 막고 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가끔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꼭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라는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삶이 한결 여유롭고, 주체적으로 느껴진다.
감각에 민감해지는 훈련은 단지 청각에 그치지 않는다. 나중에는 냄새, 감촉, 분위기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삶이 좀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현실감각을 되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