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를 마치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켠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고, 머릿속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순간의 자극은 있었지만, 정작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끝에, SNS 대신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SNS 알림. 그 하나하나에 반응하느라 정작 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되돌아볼 틈조차 없었다. 피곤한 이유가 단순히 업무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고, 도파민 디톡스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디지털 자극’을 줄이는 습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첫 단계로 선택한 것이 바로 SNS 대신 노트에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노트 한 권을 새로 꺼냈다. 매일 저녁 10시, 스마트폰은 거실에 두고 방 안으로 들어가 노트를 펼치는 것으로 루틴을 시작했다. 별다른 형식은 없었다. 그날 느낀 감정이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 혹은 내일 하고 싶은 일들을 아무 순서 없이 적었다. 때로는 글머리가 막혀 빈 칸으로 남긴 날도 있었지만, ‘꾸준히 적는다’는 것 자체를 습관으로 삼았다.
첫 주에는 불편함이 컸다.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어색했고, 휴대폰을 멀리한 저녁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고요함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둘째 주부터는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를 글로 정리하면서 감정의 흐름이 차분해졌고, 이전보다 집중력 회복이 빨라졌다. 생각을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들면 불면의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다.
노트에 글을 쓰는 시간은 단지 기록을 넘어서, 자기 대화의 시간이 되었다. SNS 피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고요함과 집중이 생겼다. 특히 하루 중에 겪은 작고 사소한 일들조차 다시 떠올리며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감정 조절 능력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무자극 루틴이 주는 힘이란, ‘의식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데 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에는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이 낯설고 느렸다. SNS의 짧고 빠른 콘텐츠에 익숙해진 나에게, 노트는 너무나 느린 매체였다. 몇 줄 쓰다 보면 손이 아프기도 했고, ‘이걸 꼭 해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들던 날도 있었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놓치는 듯한 불안감도 종종 찾아왔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지나니 오히려 불필요한 연결에서 자유로워지는 감각이 생겨났다.
디지털 자극을 줄이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도구로서의 기록은, 단순한 메모 그 이상이었다.
하루의 끝에서 휴대폰 대신 펜을 드는 일. 이 작은 변화는 단순히 도파민 디톡스의 시작점일 뿐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소모되던 에너지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기록은 기억을 정리하게 하고, 감정을 정돈하게 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조금의 침묵과 나만의 호흡이었다. 하루 10분, 나를 위한 시간을 노트로 옮기는 이 루틴은 내가 매일 조금 더 ‘내 쪽으로 돌아오는’ 연습이었다.